공주에서 순교하신 분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수는 오직 천주님만이 아시느니라. -달레《한국천주교회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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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지역 천주교 전래

    한국 초기 교회사에서 공주는 순교 유적지로 빛나는 곳이다.
    공주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고 전교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인데, 그는 조선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 (프란치 스코 하비에르)에게서 세례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전교에 힘써, ‘내포의 사도’ 로 불리게 되었다. 공주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것은 1784년(정조 8년) 무렵으로 이존창이 고향 인근지역에 천주교를 전파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천주교 신앙은 천안, 면천, 공주, 한산 등으로 전파되었고, 1791 년의 신해박해를 겪으면서 청양, 논산 지역과 전라도, 충청북도, 경상도 지역에 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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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님께 봉헌 된 공주

    공주는 한국천주교회 역사상 최초로 성모신심회가 창설된 곳이다.
    1846년 제 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공주 수리치골에 은거하게 된다. 그 해 11월 수리치골의 한 오두막에서 한국교회 최초로 ‘성모 성심회’를 창설하였다. 이후 1861년 제 4대 교구장 베르뇌 주교는 선교사들의 관할 구역을 재정비하면서 공주와 그 인근 지역을 ‘성모영보’ 구역으로 선포하여 박해 중의 교회를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아래 맡기며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키운,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성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봉헌해 드린 특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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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외국인 순례자
    베버신부(Norbert Weber)

    한국과 한국인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던 외국인 선교사, 독일 성 베네 딕토회 노베르트 베버신부는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20세기 초 한국에 부임해왔다. 그는 그가 사랑했던 한국과 한국인들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 이라는 책과 기록 영화를 통해 유럽인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그들은 선교사 없이 신앙을 받아들였고 100년이 넘게 계속된 박해를 이겨낸 기적의 역사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베버신부는 1911년 4월에 황새바위 순교성지와 향옥을 방문한 외국인 최초의 순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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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회의 심장

    황새바위는 공개 참수 처형지로서, 향옥터는 교수 처형지로서 병인박해 시기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이렇게 공주지역은 충청감영이 있었기에 인근의 수많은 신자가 공주에서 처형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사학죄인으로 판결 받아 참수, 교수형으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봉헌한 장소인 순교성지로서 황새바위 순교 역사는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